병을 받아들이는 순서
- 윤또늬긔여어
- 2016년 3월 13일
- 3분 분량

병을 받아들이는 순서
이치른 전력
카라이치
가장 쓰레기는 나야,
나는 형제라는 울타리를 넘어 혼자 춤추고 있던 글러먹은 어릿광대야
그러니까 이치마츠, 넌 그대로 그 안전한 울타리 속에서 환하게 웃어줘
고등학교 때부터 이치마츠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의 밝고 순진했던 이치마츠는 온데간데없고 무기력한 이치마츠만이 남아있었다. 그때부터 이치마츠를 주시했다. 혹시 누가 괴롭혀서 그런 걸까, 문제라도 있을까, 고민하며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린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어느새, 사랑하고 말았다.
예전에 연기공부를 한때 읽었던 책에서 주워들은 말이 있다. 사람이 자신의 병이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순서라는 내용이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나 또한 그랬다.
처음 널 보고 뛰는 가슴이 사랑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그 때에 들었던 감정과 너무도 잘 맞아서 억지라도 부리려는 듯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착각이라고, 형제에 남자인 너를 사랑할 리 없다고,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내 감정과 싸워야 했다.
그 다음은 분노였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듯이, 내 감정이 분명 그것이 맞다고 증명하듯이 너만 보면 쿵쿵 뛰어대는 가슴에 화를 내며 내 주먹으로 나를 내려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삐뚤어진 감정은 갈 곳을 잃고 닥치는 대로 너로 향했다. 애 먼 너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가끔은 나를 꿰뚫어보는 듯 한 눈빛을 한 네가 짜증나고 또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너를 때리려고 한 적도 있지만 차마 겁먹은 그 눈동자가 나를 찔러대어 손조차 댈 수 없었다. 이때부터 너는 나를 경멸하기 시작했다. 네 눈 속에서 선명히 드러나는 네 감정을 볼 때마다 이런 상황으로 끌고 와 버린 나를 싫어했다.
그렇게 폭발하듯 감정을 터뜨리고 나서는 내 감정과 타협했다.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운 너를 사랑하지 않을까. 너에게 깃든 사랑을 어떻게 떼야 할지 나에게 끊임없이 물어보았다. 수천가지 방법이 나왔지만 무엇 하나 실행 할 수 없었다. 어떤 짓을 해도 네 웃음에 스르륵 녹아 너를 사랑하고 말았다. 이때, 너에게 고백했다. 자신의 친 형제, 심지어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 받은 네 얼굴을, 나른한 눈이 크게 뜨이고 내 멱살을 잡고 나만은 그래선 안 된다고 소리 지르던 모습을, 왜 말한 거냐고 말하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잊었을 감정이라고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고백하던 네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때 떠올랐다. 네게 화를 내던 나를 향한 눈동자의 담긴 경멸은 너 자신에게 향하던 것임을
이렇게 해피엔딩이었다면 좋았을 테지-
"카라마츠"
"응?"
"... 너랑 나는 왜 형제인걸까"
네 말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 형제냐고 물으면 우리가 선택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해야 했는데, 우습게도 그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사랑 또한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떤 것도 우리가 선택한 것이 없었다. 가족인 것도, 사랑한 것도. 그 대화 후에 나도 모르게 이치마츠의 입술에 키스한 것도, 그 무엇도 우리는 선택할 수 없었다.
그 날밤의 키스와 함께 타협의 다음단계인 우울이었다.
해피엔딩이 우리에게 있을리 없었다는 걸 깨닫고 서로서로에게 끝없이 날카로워졌다. 그날, 우리는 실감했다. 넘어서는 안되는 그 울타리를 우리는 넘어버렸다는 것을, 바보 같은 양일뿐인 우리는 우리를 넘어서면 살 수 가없다. 그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맛있는 풀을 뜯었으니 다시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는 마치 병걸린 것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 이치마츠는 더욱 무기력하고 신경질 적으로 변해 어떤 말에도 화를 내고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매번 내게 화를 내는 정도는 날이 갈수록 더해져 나중에는 형제들이 들고 말리 정도였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이치마츠가 내게 화를 내고 싶어서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소리 지르는 이치마츠의 눈동자 속에서는 미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는 듯이, 고슴도치 마냥 자신의 가장 나쁜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라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듯 한 모습이었다. 나는 너와 똑같이 화를 낼 수 없었다. 너랑 다르게 겁이 많은 난 정말로 네가 나를 싫어할까 무서웠다.
이제는 마지막 단계다. 수용. 나는 너를 미워 할 수 없다. 울타리로 돌아가기엔 나는 너무 멀리 나왔다. 더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너만은 다시 돌아가길 바란다. 너는 형제라는 걸,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했으니까, 나 하나를 믿고 따라오기엔 너는 약하고 겁이 많은 아이였다.
"이치마츠, 헤어지자"
독립을 준비하며 이치마츠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치마츠는 이미 정리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꼭 끌어안고 다시 놓아주었다.
내 사랑은 이 순서대로 이루어지고 사라졌다. 사람이 병을 받아들이는 순서대로, 티끌하나도 틀린 곳이 없이, 그래 이 사랑은 병이다. 나는 네게 있었던 가장 치명적인 병균 이였던 것이다. 이제 병으로 부터 자유로워 졌으니 너는 그대로 따듯하고 안전한 그 울타리로 돌아가길 원한다.
*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쵸로마츠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그래 잘지내지 이치마츠는?"
"뭐, 괜찮아"
그래 나 없이도 너는 잘 지내고 있었구나. 매 바람을 완벽히 이뤄준 네가 자랑스럽다. 완벽히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네가 대견하다.
"이치마츠 바꿔줄게"
"여보세요"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타고 들어왔다. 아직, 나는 너를 잊지 못했는데
"아픈데는 없지?"
"응, 없어"
그 순간 어느 시처럼 말과 말 사이에 네가 없는 시간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직 나는 울타리에 들어갈 길을 찾지 못했다.
다시 한 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까
"다행이네"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너인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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