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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마 쿠로

  • 윤또늬긔여어
  • 2016년 3월 22일
  • 4분 분량

*쿠로켄

*잔인한 너에게 보내는 부탁의 말 시리즈 2

「하지마, 쿠로」

“좋아해 쿠로”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먼저 입을 떼었다.

마치

밥을 먹었냐, 오늘 기분은 어떠냐는 수준의 무게로 최대한 가볍게 입을 떼었다. 네가 흘려 듣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네가 흘려 듣는 일은 없었다. 너는 분명히 들었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는 표정으로

이해한다. 너에게 있어서 나는 챙겨줘야 하는 귀찮은 존재일 테니까 옆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더 챙겨야 할 이유가 느는 것은 너도 싫을 테니까

그러니까 듣지 않았다면 좋을 텐데

“농담이야”

“나쁜 농담이네 켄마”

그래 아주 질 나쁜 농담이지 좋아한다는 말은 진심이었으나 농담이라고 해버린 그 거짓말이 가장 질이 나쁘지 어떻게 보면 내 마음을 속인 게 되어버린 거니까

정말 나쁜 말이지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시간이 될 때마다 쿠로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뱉었다. 담아두면 무거워지는 것이 마음이니까

생기는 대로 뱉어내었다.

마음이 쌓이지 않도록

이렇게 쓸고 닦아내며 청소하다 보면 다 깨끗이 지워질 마음이라고 생각하면서

“좋아해 쿠로”

“또 그 장난이야?”

커다란 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언제나 같이 따듯하고 기분 좋은 손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나에게는 더 없이도 잔인한 손이다.

또 두근거리고 만다.

바보 같은 심장은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어버린다.

“좋아해”

또 다시 말해버린다. 이 마음이 쌓이지 않도록

네가 한 가득 쌓아놓고 간 감정을 나는 또 주워 담아 입으로 내버린다.

“오늘따라 장난이 심하다고”

네 시선이 나에게로 날아든다. 날카로운 화살 같은 심장은 그대로 내 몸을 관통해 찢어버린다.

아파

내 눈에만 보이는 피가 흐른다. 모의 한가운데가 보기 좋게 네 시선이 뚫려 버린다.

그 피를 감추기 위해 나는 네 품으로 뛰어든다.

네 품에 몸을 가리면 내 눈에도 보이지 않게 되니까 따듯하게 안아주는 네 손길이 있다면 마치 진통제를 맞은 듯 아프지 않게 되니까

아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손길이 등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마치 위로하듯이 홀로 남겨진 내 사랑을 위로하듯이 손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 손은 너무 차가워서 시리다.

추워서 자꾸 계속 네 품을 파고든다.

그날은 너에 대한 마음을 씻어내려고 샤워를 조금 오래 했다. 자꾸만 씻어내도 마치 숯을 씻는 것 마냥 검댕이 묻어나서 하염없이 씻어야 했다.

결국 감기에 들려버렸다. 하지만 얄궂게도 집에는 나를 보살펴줄 사람 한 명 없었다.

마치 이 병은 내 사랑이라는 듯이 봐주는 사람 없는 정말 하 혼자만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이 정말 아무도 내 열을 알아주지 않았다.

내 숨소리만 가득 찬 방안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누군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늘 내가 아플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오는 사람

“켄마, 아프냐?”

양손에는 내가 좋아하는 애플파이랑 약 봉지가 들려 있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쓰고 도리질을 쳤다. 이럴 때 너를 보면 하염없이 좋아한다고 말할 것 같다.

한두 번이 아닌지라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가운 물수건을 올려주고 약을 손에 쥐여주었다.

“한 번에 먹어”

찬물과 함께 손에 쥐여진 약은 보기에도 크고 짜증이 난다. 나는 왜 아파서 네 보살핌을 받는 걸까

한동한 약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더니 내 손안에 악을 빼앗아 물과 함께 제 입에 넣어버렸다.

“쿠로?”

이상행동에 무슨 짓이냐고 붇기도 전에 양 볼을 가득 부풀린 입술이 가까이 다가왔다.

“답답해”

입 안 가득 미지근해진 물과 약알이 몇 개가 흘러 들어왔다. 단단한 약이 녹아 쓴맛이 퍼졌지만 그것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놀란 채로 가만히 있었다.

“방금 뭐한 거야 쿠로?”

“약 먹여줬잖아”

누가 그런 식으로 약을 먹여줘, 란 말이 목 끝까지 차 올랐다. 아무리 소꿉친구라도 이런 거 안 하잖아.

“…좋아해 쿠로”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온다. 계속 이 마음을 세이브 시키지 않고 리셋 시켜버리려는 반복행동이다.

끊임없이 사망루트를 밟아버린다.

이렇게 말해버린다고 저장된 데이터까지 없어지는 게 아니란 걸 가장 잘 아는데도

좋아해,라고 말했을 때

조금은 피해야지

조금은 기분 나빠해야지

그래야 내가 너를 포기하지

내 ‘좋아해’를 계속 들으면서도 자꾸 웃어주니까 착각하게 되잖아

아플 때 우리 집에 와서 나를 간호하지마

집어 갈 때 일부러 우리 교실까지 나를 데리러 오지마

내 ‘좋아해’에 대답할 수 없다면 그러지마 쿠로

“좋아해”

다시 가벼운 ‘좋아해’를 입밖에 내놓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었다.

아무리 좋아한다고, 내 마음을 쓸어 버려도 다시 생겼다. 내 이 사랑은 먼지 같은게 아니라 세균이었다.

먼지는 한번 털어버리고 나면 끝이지만 세균은 아무리 쓸어 버려도 하나가 남아 번식했다. 아무리 치워도 끝이 없는 곰팡이 같은 사랑이었다. 이 더러운 마음을 어떻게 치워야 할까, 그 곰팡이에 친절을 주니까 기세 등등해서는 더욱 빠르게 자라난다. 이 곰팡이의 원인은 나이면서도 너다,

하지만 치우는 것은 나의 역할이다.

늘 쿠로가 내 뒷 처리를 해줬으니까 이것만큼은 내가 뒷처리를 해야 한다.

입술을 깨물어 각오를 다졌다. 정말 마지막이야, 더 이상 쿠로를 좋아하지 않겠어 라고

따듯한 공기가 훅 하고 콧속을 파고 들었다.

살짝 나는 땀냄새 익숙한 냄새이다.

어느새 나는 쿠로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고양이는 사람도 잘 홀린다잖아”

쿠로는 나를 가두고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너는 고양인가봐”

알 수 없는 말 투성이이다.

쿠로의 턱이 내 머리 위를 꾸욱 눌러왔다.

“자꾸 그렇게 사랑스러운 얼굴로 좋아한다고 말하면 싫어도 좋아지게 되잖아.”

“네가 좋아한다고 말할 때 마다 심장이 아파”

입술 끝에 아까와 같은 감촉이 닿았다.

또 한번에 입맞춤, 인식하자마자 어깨를 밀어 쿠로와 거리를 두었다.

“좋아해 켄마”

떨어진 입술이 마치 나를 잡아 먹을 듯이 다가와 내 입술을 삼켰다.

입안으로 혀가 들어와 안을 휘저었다. 목 뒤까지 넘어와 내 곰팡이 핀 마음마저 삼켜버릴 듯이

입술이 떨어지고 타액이 길게 늘어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건 무슨 의미인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내 정신까지 휘저어 놓은 듯한 키스였다.

입술의 떨어지고 멍한 나를 쿠로는 자가 품에 넣어 가뒀다.

따듯하다 못해 뜨거울 정도로 따뜻하다.

쿠로의 품 안은 넓어서 안기기 좋았다.

덩치가 큰 쿠로와 작은 나, 안기기에는 완벽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쿠로의 품 안은 필요 이상으로 넓어서 작은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어도 사람 한 명 정도 더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늘 이 품은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하는. 아직 어린 내가 빌려 쓰는 품이라고 상기했다.

하지만 쿠로의 품 안에 나 외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계속 이 품은 내 것이었다.

“좋아해 쿠로”

“나도 좋아해 켄마”

마음 깊숙한 곳이 간질간질하다. 이제 퀴퀴한 곰팡이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아까 그 입맞춤이 삼켜버린 것은 내 마음이 아니라 곰팡이였는지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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